지난해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문학동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시집을 낸 이원하 시인. 그는 “제주에서 여행처럼 살았던 1년이 시의 자양분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시를 쓰기 위해 제주에 갔고, 거기서 쓴 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이 시인처럼 단지 며칠 동안의 여행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제주를 깊게 느끼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 달 살기, 1년 살기가 젊은 층에 유행하면서 관련 숙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앱까지 생겨날 정도다.여행객이 머무는 곳도 기존의 여행객과는 확실하게 구별된다. 이는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가 지난해 박상원 홍콩폴리텍대 교수 연구팀에 의뢰해 분석한 ‘제주 방문 관광객 이동 패턴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의 주요 동선은 공항·렌터카·숙소 등 주요 거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바다·치킨집·카페·맛집 등이었다. 관광지를 한 곳이라도 더 보려고 애썼던 여행 패턴에서 벗어나 특정 지역에 여유롭게 머물며 인근 해변과 맛집·카페 등을 돌아다니는 여행이 대세가 된 것이다.함덕해변, 성산일출봉·섭지코지, 서귀포 구시가지, 중문관광단지, 협재·금릉해변, 곽지·한담해변 등 유명 관광지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이 몰린다. 하지만 종달리, 표선 등 비교적 한적하고 사람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온전하게 휴식에만 몰두하는 이도 늘고 있다. 사려니숲길, 우도 등 명승지를 보려고 계획했다가 실제로는 제주 동문전통시장과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등 식도락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더 많이 찾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숙소를 고르는 기준도 달라졌다. 호텔이나 리조트, 펜션 등을 선호했던 이전과 달리 개성이 뚜렷하고 감성이 느껴지는 숙소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비용은 두 번째 문제다.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우리’끼리만 머물고 싶어 한다. 에어비앤비, 스테이폴리오 등의 숙소 전문 앱에서 인기 있는 숙소의 경우 숙박요금이 비싸도 6개월 이상 예약이 꽉 차 있다.제주에 인테리어 소품점이 늘면서 소소한 쇼핑을 즐기려는 사람도 더불어 늘어났다. 외국의 유명 소품점이 무색할 정도로 소품 종류도 많아졌다. 기껏해야 해변에서의 물놀이 정도였던 아웃도어 활동의 격도 달라졌다. 서핑은 기본이고 카이트 서핑, 특수 제작된 헬멧을 쓰고 동남아시아 휴양지 바닷속을 유영하던 ‘시워킹(sea walking)’까지 들어왔다. 최근에는 해산물을 채취하며 해녀의 삶을 체험하는 프로그램까지 생겼다. 자동차 대신 스쿠터를 빌려 해안가나 숲길을 누비는 여행객도 늘고 있다.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장은 “제주는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없어진 상황에서 국내 여행의 모든 트렌드가 집약된 곳”이라며 “변화된 시대에 맞춰 보다 여유 있게 비대면 여행을 즐긴다면 해외여행 못지않은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길 드문 곳, 보기 드문 풍경…당신이 몰랐던 '제주'

제주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탐나라공화국은 예술적인 조형물을 모아 놓은 일종의 테마파크다. 황무지가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나무도 물도 없는 돌 땅에 나무를 심어 숲을 꾸미고, 80여 개의 연못을 만들었다. 강원 춘천 남이섬에 ‘나미나라공화국’을 세운 강우현 대표가 2014년부터 제주에 정착해 직접 조성했다. 누구나 나무를 심거나 채소를 가꿀 수 있는 ‘여행자가 가꾸는 여행지’로도 알려져 있다. 노자의 사상을 담은 노자예술관이 있으며, 전국에서 버려지는 헌책 30만 권을 보관하는 헌책도서관도 유명하다. 제주의 화산석을 이용해 도자기나 공예품을 만드는 것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작은 ‘국가’를 표방하는 만큼 탐나라공화국을 방문하려면 반드시 예약하고 여권을 발부받아야 한다. 현장을 조성한 직원이 직접 스토리투어를 해 주는 것도 이색적이다.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동백동산은 제주 생태관광의 또 다른 명소다. 전국 최대 상록수림인 동백동산은 생태적 우수성을 인정받아 2011년 람사르 습지로, 2014년 세계지질공원 대표 명소로 지정됐다. 화산 폭발 후 흘러내린 용암이 쪼개지면서 형성된 제주의 숲 곶자왈은 구멍이 숭숭 뚫린 용암석의 특성상 물이 고이는 습지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동백동산은 용암이 판형으로 남아 물이 빠져 내려가지 않고 고여 있다. 동백동산 안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 습지인 먼물깍도 있다. 먼물깍은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다 해서 ‘먼물’이라는 뜻과 ‘끄트머리’를 일컫는 ‘깍’이 합쳐진 제주 방언이다. 먼물깍에는 다양한 수생식물과 곤충 및 양서류가 서식하고 있어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는 제주의 농업유산인 밭담이 잘 보존돼 있으며 제주 해녀의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해녀박물관이 있다. 해녀박물관을 중심으로 제주 해녀의 삶을 느낄 수 있는 밭담길이 조성돼 있는데 ‘하도리 밭담길’ 혹은 ‘숨비소리 길’이라고 부른다. 숨비소리는 해녀가 물질할 때 참았던 숨을 내뱉는 소리다. 과거 제주의 해녀는 물질 외에 밭일을 겸하며 생활을 유지했는데, 해녀가 물질과 밭일을 하기 위해 지나다녔던 길이라 해서 숨비소리길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해녀박물관 주변에 있는 불턱(해녀가 물질하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쉬던 장소), 신당(신을 모신 곳), 제주도 기념물 제24호인 별방진(왜구를 막기 위해 해안에 쌓은 성곽) 등 해녀와 관련된 유산이 널려 있어 제주의 생활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돌오름길은 서귀포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시작해 돌오름 입구를 지나 보림농장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8㎞ 구간이다. 서어나무 군락지와 삼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임도를 중심으로 조성된 표고 재배농장에서 표고버섯도 관찰할 수 있다. 예전에 숯을 굽던 가마터도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안덕면에 있는 비오토피아는 주거 공간과 생태공원이 결합된 곳이다. 단지 안에는 이타미 준이 만든 수(水)·풍(風)·석(石)·두손지중(地中) 등 네 개의 미술관이 있다. 수(水)·풍(風)·석(石) 미술관은 미술작품을 위한 전시장이 아니다. 건물 자체가 각각 물, 바람, 돌을 표현한 작품이다.

발길 드문 곳, 보기 드문 풍경…당신이 몰랐던 '제주'

수(水) 미술관은 물과 태양을 몸으로 느끼는 공간이다. 건물 천장은 동그랗게 뚫려 있고, 바닥엔 물이 고여 있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의 모습이 수면 위에 시시각각 다르게 비친다. 대자연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풍(風)미술관에 들어가면 긴 복도가 나타난다. 그 통로 외부에는 나무를 잘라 만든 구조물이 설치돼 있어 바람이 지나가면 소리를 낸다. 자연의 연주다. 내부에 있는 돌에 앉아 명상에 잠길 수도 있다. 석(石) 미술관 안에는 돌 하나가 있다. 천장과 벽의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바닥의 돌을 비추게 설계돼 있다. 빛과 돌과 관람자가 하나가 돼 시간과 공간을 잊게 해준다.두손지중(地中) 미술관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산방산을 마주하며 그 산에 대한 경외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네 개의 미술관 가운데 유일하게 실제 미술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곳이다.현대 건축물의 특징은 스스로를 빛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축물이 사람, 주변환경과 어우러지고 소통한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서귀포시 성산읍 유민미술관은 그런 개념을 잘 구현한 건물이다. 현무암으로 만든 구조물이 주변의 자연과 함께 새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관람자가 건축물 내부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인공물과 자연이 이뤄낸 예상치 못한 장면에 감동받는다. 돌담과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성산일출봉은 압권이다.안덕면의 중산간에 있는 본태박물관도 안도 다다오 작품이다. 기하학적 형태의 건물과 빛과 물이 이룬 조화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경사진 대지의 특징을 바꾸지 않고, 서로 다른 높이에 두 공간을 배치했다. 노출콘크리트와 건축물의 미려한 색채가 주변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에 대한 건축가의 철학이 뚜렷하게 담겨 있다.제주=글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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